자막의 시대, 자막을 만드는 사람들(박나연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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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4회 작성일 24-06-11 00:0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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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K-콘텐츠 중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영상번역을 활발히 하고 계시는 박나연 영상번역가님을 만나보았습니다.
1. 안녕하세요. 박나연 영상번역가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좋아하세요? 저는 그 영화에 들어가는 자막을 거의 매일 맛보고 뜯고 즐기는 일을 하는 박나연이라고 합니다. 23년 차 영상번역가이자 극장, IPTV, 영화제, OTT에 들어가는 영상 콘텐츠의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누벨콘텐츠 미디어'의 대표이기도 하고요.
2. 번역가란 직업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특별히 영상번역가란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 때는 연극에 미쳤고, 졸업 후에는 잡지사 기자로 동분서주하다가, 유학을 가서는 뮤지컬 무대에도 서는 등 끼를 발산하고, 귀국 후에는 DVD 영화 판권 일을 했는데요. 어느 순간 더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늘 그랬듯 가슴이 시키는 일
을 하기로 했어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 즉, ‘글’과 ‘영화·연극’이 버무려진 영상번역에 입문하게 되었죠.
3. 한 언어로 된 콘텐츠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한다는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닐 것 같은데요. 영상번역 작업의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작업할 때 어려웠던 일화가 있을까요?
의뢰가 들어오면 번역 여부와 견적, 마감일 등을 상의하고, 거래처나 고객사의 컨펌이 떨어지면 이메일 혹은 파일 공유 플랫폼을 통해 대본과 동영상 파일을 넘겨받아요. 자막본 의뢰면 자막 프로그램을 실행해 타임을 잡으면서 번역하고, 더빙본 형식을 요구하면 또 그에 맞게 작업을 진행해 마감일에 제출합니다.
영상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등장인물의 정서, 성향, 가치관 등을 반영해 감독이 전하려는 ‘의도에 맞는 말맛’을 잘 살려내는 거예요. 한데 원본 대사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당최 적절하고, 적합하고, 적당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아주 난감하죠. ‘내가 캐릭터다’라고 셀프 빙의를 해 봐도 소용없고,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책을 뒤적여 봐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다룬 SF물이나 미국식 농담이나 말장난을 국내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공해야 할 때가 그런 경우입니다.
4. 2013년부터 10년 넘게 영상번역 전문 업체인 ‘누벨콘텐츠 미디어’를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처음 서비스를 기획하고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때 부침도 있었지만, 다시 이 업계로 돌아오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어요. 그러다 알아차린 거죠. 이쪽 피라는 걸요. 이 일을 가장 오래 했고, 편하게 느끼고, 그럭저럭 잘하더라고요. 잘하는 걸로 밥벌이하는 게 맞겠다 싶었죠. 그리고 조직에서 모나게 군적은 없지만 또 누구 밑에서 일하는 성격도 아닌 걸 알아서 직접 기획하고 운영해 보기로 했던 겁니다. 함께 일하는 번역가들도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라 통하는 게 있고, 성향상 영화업계나 방송관계자들과 합이 맞는 듯해서요.
5.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시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영상번역 작업을 하고 계신데, 이렇게 영상번역에서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노력은 어떤 점들이 있을까요?
다양한 경험이 가장 중요해요. 그렇다고 장르별로 모든 걸 다 경험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직접 분노의 드라이빙을 하고, 그린피스 활동을 하고, 미래에 다녀올 수는 없죠. 그러니 간접적으로라도 많은 걸 경험하는 것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 위한 자구책이 아닌가 싶어요. 장르별로 자막 퀄러티가 높은 작품을 즐겨 시청하고, 상상력과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 여러 장르의 독서도 추천합니다.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요하는 직업 같아요.
6. 코로나 시대 이후 OTT 시장의 확대, 그리고 K-드라마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데요, 글로벌 대중에게 K-드라마가 각광받는 이유와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한 개선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21년도인가요? 모 인터뷰에 실린 윤여정 배우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한국에는 늘 좋은 영화,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 갑자기 주목할 뿐이다.”라던. 제 생각도 그녀와 같아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고, 언어의 한계가 허물어지면서 장벽이 낮아지자, 세계가 알아본 거죠.
또 K-드라마의 소재와 주제 의식이 보편적인 점도 작용했을 터이고,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개성이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게 아닐까 싶어요. 공감하되 약간 다르게 튀는 매력에 남녀가 서로 홀리는 것처럼요.
그런가 하면 K-드라마가 투자 대비 아웃풋이 좋다는 말도 있어요.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도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니 OTT 기업 입장에서 투자를 안 할 이유가 없죠.
물론 문제점은 있어요. OTT 투자로 제작되어 호응을 끌어낸 국내 작품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폭력적, 자극적, 선정적이라는 거죠. 그런 콘텐츠들만이 살아남는 구조이기 때문인데요. 콘텐츠의 쿼터제 같은 최소한의 규제를 만들어서 일정 비율로 장르나 소재의 구색을 갖춘다면 좀 더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7. 영상번역 업체를 운영하시면서, 작업하신 K-드라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임시완, 김설현 주연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가 기억에 남아요. 최근에 저희 업체에서 작업한 K-드라마이기도 하고, 요즘 <소년시대>로 핫한 임시완 배우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미생>, <변호인>, <불한당> 같은 작품으로 성실하게 필모를 쌓더니 이번에는 왕 찌질이 역을 맡은 <소년시대>로 그의 포텐을 터트렸잖아요. 전작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에서는 작품 속 캐릭터처럼 한 템포 쉬어 가는 듯한 그의 호흡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8. AI 기술이 점차 발전하게 되면서, 번역 서비스가 사람의 손을 거치는 번역 작업을 대체할 것이란 예측도 있는데요. 영상번역가로서 AI 기술로는 대체 불가능한 차별점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영상번역계뿐 아니라 인공지능을 장착한 AI의 등장으로 현재 전 세계의 여러 직군이 위협받고 있어요. 하지만 AI의 기술력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죠. 특히 영상번역의 카테고리에서 볼 때 AI는 문장을 번역(잘 옮기는)하는 데는 뛰어나지만, 컨텍스트의 이해, 문화적 차이의 고려, 특수 용어 처리 등의 면에서는 인간 번역가에 비해 한계가 있어요. AI보다 한발 앞서는 창의력, 감성지능, 인지적인 유연성을 가진 인간 번역가들이 아직은 유효한 이유입니다.
9. 영상번역이란 분야에 오랫동안 계셨던 만큼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을 다루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세심한 작업을 통해 완성된 최종 결과물을 본 순간의 감상은 어떠셨나요?
영상번역가 역시도 창작의 고통과 해방을 만끽하는 작가적 마인드로 중무장하고 있죠. 그런 성향의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또 살아남는 거 같아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장 앞에서 쩔쩔매다가도 마침내 유레카!의 순간이 오면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희열이 찾아와요. 또 내가 번역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감독의 의도대로 빵 터져야 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킥킥거린다거나, 심오한 화두를 던져주는 자막이 등장하자 진중한 분위기가 흐를 때 가슴이 묵직해지죠. 해외 감독님과 함께한 한국 스태프 같은 느낌이 든다랄까요? 관객들은 오롯이 나의 자막을 통해 영화를 읽고 이해하는 만큼 자막 한 줄에 대한 책임감도 진하게 다가와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희열과 보람이 있기 때문에 이 일과 계속 연을 맺고 있는 듯합니다.
10. 박나연 영상번역가님이 생각하는 (문화)다양성에 대한 나름의 정의는?
딱 이 문장이 떠오르는데요. ‘다양성의 점을 연결하면 또 다른 스토리가 된다.’
명사로 끝맺음을 해본다면 ‘위로와 소통이 필요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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