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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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2회 작성일 21-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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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번역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영상번역 업계의 민낯을 마주하다

 

좋은 번역은 무엇일까. 올해 초 방영된 JTBC 드라마 <런온>의 주인공 미주는 영화번역가다. 좋은 번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미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최대한 기억에 안 남는 것? 안 거슬리고 스치듯 사라지는 것.'

번역 텍스트는 주목받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그런데 번역 텍스트와 번역가에 대한 대중들의 이목이 심상찮게 집중되는 분야가 있다. 영상번역계다. 영상번역은 전통적으로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자막과 더빙을 가리켰지만,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영상번역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

누구다 미드(미국 드라마) 하나쯤은 정주행해 본 경험이 있는 오늘날, 양질의 자막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역이나 자막 내 혐오 표현 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영상번역 자막을 둘러싼 논란과 그 이면에 놓인 영상번역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봤다. 
 


엔드게임부터 넷플릭스까지,
영상번역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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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자막번역 특유의 '16자 규칙'과도 관련이 있다. 자막이 떴다 사라지는 데 보통 2초에서 4초가 걸리는데, 16자 정도여야 시간 안에 읽기에 무리가 없다는 이유에서 통용되는 규칙이다. 장면의 내용이나 배우의 대사를 짧은 시간 동안 충분히 전달하려면 번역가는 내용을 생략하거나 응축된 형태로 축소번역해야 한다. 박윤철 교수는 "시간적 제약과 글자수 제한이 어색한 번역이나 오역 에 영향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글자 수 제약 등 영상번역이 지닌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자막의 부족한 인권 감수성을 정당화하긴 어렵다. 그러나 남녀 캐릭터 간 존.하대 표현은 많이 개선됐다. 함혜숙 영상번역가는 "최근에는 이유 없이 아내만 남편한테 존댓말을 하게 번역하지 않고, 집사람이나 안사람, 마누라처럼 아내를 비하하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번역업계 내의 성평등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영상번역 전문회사 누벨콘텐츠미디어 박나연 대표는 "영상번역은 문화콘텐츠를 다루는 일인 만큼 변화하는 트랜드에 민감해야 한다"  "옛날 표현을 성찰 없이 막 넣어선 안 되고,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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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번역과 번역 노동환경을 위해


  오역 논란의 해결을 위해서는 표준화된 번역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 기준은 연구를 통해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이 학계에서 지배적이다. 예컨대 전쟁영화나 사극 등 각 장르에 맞는 자막 특징을 연구한 자료가 마련돼야 더 좋은 번역을 위한 기준을 확보할 수 있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박윤철 교수는 "현재로서는 영상 자막번역 연구에 책정된 예산이 없고 정부기관의 주도 없이 관심에 의해서만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성차별적 표현이나 혐오 표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번역가 개인에게 혐오 표현 시정의 책임을 맡기기보다, 번역 업체 측에서 혐오 표현 등을 규제하는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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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가가 생산해내는 자막의 질과 그들의 노동환경은 무관하지 않다. 번역가와 번역회사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시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나연 대표는 "의뢰 업체가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번역회사 입장에서 우리와 계약한 번역가에게는 급여를 밀리지 않고 드리려다 보니 곤란할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박윤철 교수는 번역업계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표현화된 번역료 가이드 라인이나 번역가에 대한 복지혜택 등을 정부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OTT 서비스의 등장과 성장세는 영상번역가 지망생이나 영상번역가에게 새로운 기획의 장을 열어줬지만, 번역가에 대한 처우 개선까지 이끌어내진 못했다. 오역이나 관습에 젖은 혐오 표현, 스크린 너머 번역가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번역업계 안팎의 인식이 필요하다. 양질의 번역과 노동환경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더욱 건강하고 풍성한 영상 콘텐으가 만들어질 수 있다.

 

- 인용/ 서울대 저널: 김하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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